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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던 피터슨의 12가지 인생의 법칙-세번째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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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던 피터슨의 12가지 인생의 법칙-세번째

필사는 형 2021. 1. 18.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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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사방으로 지평선이 보이는 대천 한복판 시골 마을에서 자랐다. 캐나다 중서부에 있는 앨버타주 페어뷰라는 곳인데 생긴지는 고작 50년밖에 되지 않았다. 당시 이곳에는 3천 명 정도가 살고 가장 가까운 도시는 600km 떨어진 곳에 있었다. 케이블 텔레비전과 비디오 게임 인터넷은 당연히 없었다. 특히 5개월이나 계속되는 겨울이 문제였다. 한낮에도 기온이 영하 40도를 밑돌고 밤에는 훨씬 더 추웠다. 그런 겨울이 찾아오면 세상은 다른 곳이 된다 기온이 영하 40도 이하로 떨어지면 집 밖으로 나갈 생각은 접어야 한다. 밖에 나가 처음 숨을 들이마시면 순간 차갑고 건조한 공기로 인해 폐가 얼어붙는 느낌이 든다. 속눈썹이 얼어버려 위아래 속눈썹이 달라붙는다. 샤워하고 머리카락을 제대로 말리지 않으면 전기에 감전된 귀신 머리카락처럼 빳빳하게 곤두선다. 어린아이들에게는 놀이터 철제 시설물의 절대 차를 대지 말라고 말해 줘야 한다. 자동차는 밤에도 시동을 켜 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름이 얼어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철저히 대비해도 시동이 꺼지는 경우가 있다.

 겨울 어느 날 밤늦게 친구 집에 가려다가 낭패를 겪은 적이 있다. 다른 친구가 운전하는 1970년식 닷지 챌린저 조수석에 앉아 있었는데 수동변속기 고장이 나서 난방 장치도 작동하지 않았다. 앞이 보이지 않아 헝겊에 보드카 드를 묻혀 운전석 앞 유리를 2시간 내 닦아냈다 그렇다고 자동차를  멈출 수는 없었다. 멈출 만한 곳이 없었으니까. 우리 가족이 살던 곳은 이동하는 겨울밤이 유독 길고 어두웠다. 12월에는 아침 9시 30분에 되어야 해가 떴다. 그래서 학교에 갈 때는 한밤 중처럼 해도 없고 집에 돌아올 때는 이미 해가 질 무렵이었다. 젊은이들에겐 할 일이 별로 없었다. 여름에도 없고 겨울에는 더더욱 없었다. 그래서 친구가 소중했다. 그 어떤 존재보다 소중했다. 당시 내겐 크리스라는 친구가 있었다 그래서는 책을 즐겨 읽는 영리한 친구였다.  둘 다 레이 블레이드, 블루 로버트, 하인라인, 아서 클라크 경의 과학 소설을 좋았던 터라 마음이 잘 통했다. 하지만 모든 장점이 가족 문제로 바래 졌다. 그 문제가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는 지금도 모른다. 아버지는 자상하고 어머니는 친절하며 누나들은 똑똑했다 누나들은 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이상하게도 크리스는 누구에도 무살핌을 받지 못하고 방치되다시피 했다 그것 때문인지 그래서는 아는 것도 많고 궁금한 것도 많은 아이였지만 항상 환한 표정으로 세상을 원망했다. 그래서가 자동차사고를 낼 때마다 그의 아버지는 별 말없이 수리해 주었다. 심지어 다른 뭔가를 사 주기로 했다. 오토바이도 사주고 아이스크림 판매형 승합차도 사주었다. 그런데 크리스는 오토바이를 좋아하지 않았고 아이스크림 승합차도 좋아하지 않았다. 크리스가 아버지 대한 서운함이 많았다. 그 아버지에게는 질병이 있었는데 그걸 너무 늦게 알게 되어 건강이 좋지 않았다. 크리스에게는 두 살 어린 에드라는 사촌이 있었다. 나는 애드를 무척 좋아했다. 에드는 잘생기고 유머 감각도 있어서 그렇게 매력적일 수가 없었다 누구나 13살 시절 애드를 보면 커서 뭐가 돼도 되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 마크스 에드는 친구들과 함께 내 차와 그래서 차에 나눴다고 여기저기를 계속 돌아다녔다. 기나긴 겨울밤에 지루함을 달래는 우리만의 놀이였다. 레너드 애비뉴를 따라 말 끝에 있는 중심 거리를 들러 고등학교를 지나 서쪽으로 넘어가거나 아니면 중심 거리에서 동쪽으로 가기로 했다. 이런 식으로 무작정 계속 돌아다녔다. 동네 온전히 지겨워지면 외곽으로 나갔다. 교외에는 면적이 78만 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대평원이 있었다 프랑스와 독일 땅을 합친 것과 맞먹는 크기였다. 

  차를 타고 싸돌아다니지 않을 때는 파티에 갔다. 10대후반 형들이 가끔 친구들을 집으로 부를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동네 말썽쟁이들이 모여들어 깔끔하게 끝난 적이 거의 없다 나는 이런 파티를 좋아하지 않는다 기억에 남을 만한 추억도 없다. 파트장 분위기는 울적했다. 조명이 어두워서 답답하고 음악 소리가 너무 커서 대화도 불가능했다. 어차피 할 말이 별로 없어서 그나마 다행히 없다. 파티에는 동네를 대표하는 문제아 한두 명은 끼어 있었다. 모두 내일은 없다는 듯이 취하도록 마시고 구역질이 나도록 담배를 피웠다. 그늘이 왜 그렇게 파티에 집착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이 조금이라도 신나는 일이 있으면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들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우리는 어렸지만 냉소적이고 염세적이었다. 주변 어른들이 토론 클럽이나 스포츠 동호회 공군 훈련단을 만들어 아이들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어 보려고 했지만 우리는 관심이 없었다. 우리는 기존의 관습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추구 하기는 했지만 우주의 흐름에 자신을 맞추는 단계는 관심이 없었다.

 나는 고향을 떠나 다른 곳에서 살고 싶었고 혼자만의 바람은 아니었다. 고등학생 때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은 모두 중퇴했다. 대신 새로운 두 친구를 만났다 두 친구는 페어뷰 보다 훨씬 외진 캐니언이라는 곳에서 전학을 왔다. 근처에는 고등학교가 없어 페어뷰에서 하숙을 하며 학교에 다녔다. 그런도 괜찮은 친구였다. 야심이 넘치고 솔직하고 믿음이 갔다. 지적인데 다 유머도 너무 좋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페어뷰에서 120km 좀 떨어진 그랜드 프레리 리저널 칼리지라는 학교에 입학했다. 한 친구는 내 룸메이트가 되었고 또 한 친구는 다른 지역 대학에 갔다. 그 친구들은 꿈도 커고 목표도 높았다. 내가 대학에 가기로 마음먹은 것은 그 친구들의 영향이 컸다. 나는 과거에 굴레를 떨쳐낼 수 있었다. 시골 마을에서는 모두 서로에 대해 시시콜콜한 것까지 알고 지냈고 우리의 깡통을 매달고 뛰는 개처럼 , 족쇄처럼 따라다닌다. 그 마을에 사는 한 과거에서 벗어나기란 불가능했다. 그 당시 인터넷이 없어 그나마 다행히 였지만 마을 사람들 마음과 기억 속에는 모든 것이 지금도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다. 고향을 떠나 본 사람은 알겠지만 처음에는 모든 것이 혼란스럽다. 하지만 혼돈 속에는 항상 새로운 가능성의 꿈틀거린다. 지역은 낯설고 아는 사람도 없지만 고리타분한 생각을 강요하는 사람도 없다. 고향을 떠난 사람은 낡은 틀을 박차고 나온 사람보다 더 높은 목표를 향해 매진하는 주변 사람들에게서 좋은 영향을 받아 더 나은 인생을 살겠다는 각오를 가지게 된다. 나는 이런 변화를 자연스러운 성장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어느날 애드에게서 전화가 와서 그를 집으로 초대했다. 애드는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다. 어렸을 때 똘똘했던 만큼 지금도 잘 살고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를 만나자마자 헛된 기대를 했다는 걸 깨달았다. 내 앞에 나타난 애드는 머리가 벗어지고 허리마저 구부정했다, 나이가 보다 훨씬 늙어 보였다 한눈에도 안 좋아 보였다. 기대했던 활기찬 젊은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눈동자는 붉게 충혈되어 있었는데 상습적으로 대마초를 피운 사람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증상이었다. 에드가 친구 한 사람을 데리고 왔다 하여 지금도 그거 친구가 또렷이 기억난다 그는 대마초에 취해 멍한 모습으로서 있었다. 정신이 완전히 나간 상태였다. 다른 세상을 사는 사람 같았다. 마침 여동생도 집에 있었다 애드와 아는 사이였던 누이는 대마초에 취한 사람을 본 적 있는지 별로 놀라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크리스, 애드, 칼은 왜 고향을 떠나지 못했을까 고향을 떠나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더 나은 삶을 살아 보려고 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  과거의 트라우마 때문일까? 결국 인간은 모두 다르다. 상황도 다르고 환경도 다르다. 성격도 다르다. 그래서 뭔가를 빨리 배우는 능력이나 스스로 변화하려는 의지에서도 차이가 있어 보인다. 능동적인 사람도 있고 소극적인 사람도 있다.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도 있고 늘 차분한 사람도 있다. 크리스는 오랫동안 정신 나간 사람처럼 살다가 결국 30대 정신 질환을 얻었다 그로부터 오래지 않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신의 가치를 낮게 보는 사람들은 대체로 삶에 대한 책임을 외면하려 한다 이런 사람들은 늘 문제가 있는 사람들을 친구로 둔다. 과거에 그런 사람들에게 충분히 당해서 잘 알고 있지만 그렇다 그들은 서로 좋은 삶을 누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고 인생에 대해 아무 기대도 하지 않는다.

당신은 분명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가족에게 소개하기가 끄려 지는 친구 한 두 명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왜 그런 사람을 계속 친구로 둘까? 아마도 의리 때문이라고 말할 것이다. 의리는 우직함과는 다르다. 의리를 지킨다는 것은 상대방을 공정하고 정직하게 대하겠다는 약속이다. 우정은 상호 합의이다 하지만 도덕적으로 세상을 더 나쁘게 만들려는 사람을 지지할 의무는 없다. 오히려 도와주는 것이 그릇된 선택이다. 세상을 더 좋게 만들어가려는 사람을 곁에 두어야 한다. 우리에게 유익한 사람 하고만 관계를 맺는 것은 이기적인 이해가 아니라 바람직한 일이다. 우리는 그들 덕분에 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고 그들도 성장하는 우리를 보고 좋은 영향을 받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 곁에 두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당신의 원대한 목표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으면 함부로 행동하기가 어려워진다. 당신이 냉소적이고 파괴적인 모습을 보일 때 그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자신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선택을 하면 힘을 보태 줄 것이고 그렇지 않을 때는 등을 돌릴 것이다. 따라서 사소한 선택이라도 신중하게 결정하고 소임과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 각오를 다지는 것이다. 선하고 건강한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일이 쉬울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문제 많고 질 나쁜 사람들과 같이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한 사람은 그야말로 이상적이다. 그런 사람과 가까이 지내려면 강인한 의지와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겸손해야 하고 용기가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을 스스로 판단해야 하고 조건 없는 동정과 연민도 경계해야 한다. 그래도 나는 당신에게 이렇게 말해 주고 싶다. 당신에게 최고의 모습을 기대하는 사람만 만나라.!

 

  정말로, 피터슨교수의 혜안에 감사드린다. 중고등학교 시절, 나는 중2학년 때 관절염을 앓아, 1년을 휴학했다 그래서, 중학교 3년을 복학했는데, 선생님은 내게 맨 뒷자리에 자리를 배치해 주셨다. 물론 지금 생각하기엔, 한 살이란 나이가 많음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가 아닐까, 맨 뒷자리는 아시겠지만, 학교에선 늘 좀 노는 학생들의 차지다. 그렇다 보니, 이 친구들은 내가 복학생이라는 것을 알고, 어려워하지 않았고, 친구로서 잘 대해주었고 나 역시 그 친구들과 교실에서는 늘 잘 받아주는 그런 친구였다. 시험 칠 때면 나름 보 범생이여서, 답안지도 돌렸고 그 친구들이 보여달라고 하면 보여주기도 하였다. 참 운 좋게도 한 번도 걸리지 않았다. 내게 대범한 면이 있다는 것을 당시에 느꼈다.

 

  난 그때 뒤에서 노는 친구들의 생리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막 되먹은 친구는 없었다. 당시는 대부분이 삶이 힘들었고, 경제적으로 힘든 친구들이 많았던 것 같다.  중3학년을 마치고, 졸업식날, 내 주변에 있던 친구들 대부분은 대학 진학을 포기했고, 일반 공업계고등학교로 진학을 했다. 졸업식장에서 우린 참 쓸쓸히, 서로 악수로써 인사 나누며 헤어졌던 기억이 난다. 나는 그래도 대학 진학에 생각이 있어, 학교 수업을 마치면 도서관으로 향했고, 늘 늦은 시간까지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 그 친구들은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을까.. 궁금한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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