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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실패는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고..

필사는 형 2021. 8. 11.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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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10월, 업무인수팀의 한국 본사 방문이 있고, 한 달이 지난 12월 초 실무자 트레이닝 계획이 한국 본사와, 기흥에서 잡혔습니다. 저와 팀메이트 1명, 빌링팀 2명, 그리고 PTP 구매 쪽 1명 모두 4명이 한국을 방문하여, 실무자 트레이닝이 시작되었습니다. 12월 초겨울의 날씨가 매섭게 콧등을 시리게 만들었던 당시의 한국,기흥 날씨였습니다. 

기흥공장출하사무실에서 첫 트레이닝시작

저희는 숙소를 기흥시내 라마다 호텔로 정하고, 담당 대리님께서 출근하시면서, 저희를 픽업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사실 필리핀에서 근무한다고 하면, 당시 매우 신기하게 여겼습니다. 왜 필리핀이지? 무슨 문제가 있나? 당시만 해도 워낙 교민들이 많이 거주하고, 거의 분기에 한번 정도 대형사건사고가 국내 뉴스를 통해 알려지던 때였던 것 같습니다. 교민 살해사건, 어학연수 관련 비리, 필리핀 한국인 관광객 유흥지 사건사고, 등.

저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지만, 이런 주변의 부정적인 기사들로 인해,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까지, 이유 없는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이 우리네 일상인 것 같습니다. 

 

물론 저는 이런 편견들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살았습니다. 필리핀에 대해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설명해드리고, 그리고 이곳에서 사는 저의 평범한 일상을 소개해 드리면 오히려, 부러워하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좀 더 넓게 생각하고 경험해보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필리핀 북쪽 카포네스섬, 옥빛투명한 바다수영을 즐기고 막내와 함께

한우물을 파는 것은 지금 현실로는 매우 위험한 도전인 것 같습니다. 사실 당시 한국 본사에서 저희가 업무 인수차 작은 규모로 필리핀센터에서 본사를 방문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고, 지네들이 업무를 인수해 가봐야 얼마나 해내겠어하는 , 그런 마음들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큰 변혁의 작은 시작이었습니다.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 체 말이죠. 시대가 변하고, 트렌드가 급속히 빠르게 변하는 요즘, 코로나는 그런 변화를 가속화시켜버렸습니다. 10년 동안에 격을 일을 2년 만에 모든 것을 바꿔버렸습니다. 

 

한우물만 판 수많은 자영업자를 거리에 나앉게 만들었고, 재택근무 확대로, 실질적인 업무능력을 인증해 주는 시대로 바뀌었습니다. 오랜 수직적 관리조직으로 한국사회를 이끌었던 판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습니다. 오랜 관행으로, 아랫사람들이 해주던 것만 받아 상부에 보고했던 무능력한 중간관리자들은 재택근무로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관행이 빨리 무너져야 우리나라가 서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필리핀에서 생계유지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일찍이 글로발 아웃소싱회사에서 다시금 직장생활을 하면서, 얻은 지혜라고 하면, 바로 개인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과, 어떤 포지션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지식과 경험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저자신이 글로발 스탠다드로 일찌기 뇌구조를 바꾸고 맞추는데 노력했던 것입니다.

2014년 봄 초창기 OTC 팀원들

하지만 당시 기흥공장에서의 트레이닝은 제 평생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습니다.  물론 저 역시 대학을 졸업하고, 17년 넘게 우리나라 회사 조직문화 속에서 생활하면서 성장했기에 그 조직문화를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다시금 그런 조직문화 속에서의 강행군은 정말로 힘든 하루하루였답니다. 매일같이 아침 08시 칼출근과 퇴근은 늘 거의 저녁 9시 이후의 퇴근이었죠. 그 정도로 일이 많았고 제가 배우고 외우고, 익혀야 할 일이 많았습니다. 저희에게 업무를 넘겨주시는 대리님 역시, 그 많은 자료를 매일같이 입력하고, 관리하다 보니, 손가락이 아파 테이프를 감고, 늦게까지, 트리이닝에 본인업무까지 보셨죠. 

2013년 12월 저는 한국에서 트레이닝중 막내의 교회어린이발표준비

사실, 앞서 말씀드렸지만, 글로벌 스탠더드가 왜 중요한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했습니다.  동일한 OTC 업무이기에 필리핀에서 주문을 받던, 한국에서 고객으로부터 주문을 받던, 같은 SAP을 통해 입력되는 제품은 같기에 입력 과정과 제품재고 확인, 가격 확인 그리고 출력되는 최종 납품 제품 물량 확인 과정은 같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선 많은 경우, 이런 일련의 진행과정들이 표준화되어 있지 않고, 고객별로, 제품번호, 재고 별도 확인, 가격, 배송 시 배송료 면제 여부, 실린더 공병회수 여부 등이 달랐답니다. 그렇다 보니, 매일같이 복잡한 액쎌파일로 일일업무로 관리를 했던 것입니다. 필리핀에선 부수적으로 액쎌파일로 관리되는 일은 없었죠. 이런 차이를 당시 저는 잘 이해되지 않더군요. 단순 고객들의 까다로운 요구라고 하기에는 필리핀이나, 인도나, 태국도 , 세계어디나 까다로운 고객은 있기 마련이거든요.

 

이런 일련의 작업들이 충분히 이해되고 습득되는데, 그만큼의 많은 시간들이 트레이닝 과정을 통해 소요되었습니다. 이러는 가운데 저와 같이 업무를 인수하는 팀 매이트와도 트러블이 생기더군요. 이 친구 역시 매일같이 야근에 숙소로 귀가해서도 공부해야 하는 강행군에,, 입술은 늘 부러 텄고 사무실에서 받는 스트레스로 저와 이 친구사이에 의견 대립까지 생겨 참으로 힘든 시간들이었습니다. 심지어 이 친구는 얼굴살도 빠지더군요. 

성탄절이 다가오던 어느 날 저녁도 계속되는 질타를 받으며, 오늘 받은 전화 오더를 입력, 틀린 부분을 찾고, 확인하던 가운데, 오늘만큼은 좀 일찍 퇴근해서 쉬고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저녁 9시 넘은 시각에 저 혼자 먼저 퇴근하겠다 하고 가방을 들고 나와, 걸어서 경비실을 뒤로하고 삼성전자의 환히 켜진 거대한 공장을 돌아 걸어 내려오면서 마음속의 화를 풀고, 대로변에서 택시를 타고 숙소로 들어갔답니다. 

2014년 4월 둘째녀석의 고등학교졸업식

이런 일련의 과정을 겪으며, 새해를 맞았고, 두 달 동안의 기나긴, 잊지 못할 트레이닝을 마치고, 1월 말에 필리핀으로 귀국했습니다. 

 

필리핀 귀국으로, 그동안 떨어져 있었던 막내 녀석이, 아빠를 아주 어색해했습니다. 많이 미안하더군요,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자기 전에 동화책까지 읽어주며, 사이가 좋았는데 말이죠. 트레이닝으로 받은 스트레스가 아마도 제 얼굴에 고스란히 남아 있어 그랬지 않았나 생각 듭니다. 아이들은 그런 아빠의 모습이 생소하고, 많이 낮설지 않았을까 생각듭니다. 지금도 막내에겐 참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귀국 후 출근해서는 매일같이 전쟁이었습니다. 트레이닝은 마쳤지만, 실제 고객들로부터 오더를 받아 SAP에 입력하는 과정에서 계속적으로 많은 에러가 생겼기 때문이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업무를 단순화할 필요가 있었고 이는 결단을 내려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더욱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은 메씬저를 통하여, 지속적으로 업무지시가 내려지는 것에 대해 제 동료는 매우 심하게 업무 압박으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제게도 마찬가지였죠. 메씬저로 순간순간 보고 요청이 있었고, 팩스 보내달라, 시간 단위로 진척상황 보고해달라,, 정말 제동료에게는 엄청난 스트레스 그 자체였습니다. 사람은 자기도 그렇게 힘들게 트레이닝받았고, 그당시가 너무나 싫었고 스트레스였지만, 당시를 경험하고, 난 이후엔 새로운 신입사원이 오면 그랬던 사실을 잊은체 그 과정을 똑같이 밟게 하는 오류를 또 경험하게 한다면, 이는 너무도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들었습니다. 왜 개선을 못할까? 늘 그생각만이 제머리속을 가득체우고 있었습니다. 

 

 결국 저와 함께 힘들게 입사해서, 끝까지 한번 해보겠노라고 다짐했던 동료는 그 모든 어려운 과정을 경험하고서는 뒤따라오는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한 체 사직을 했습니다. 정말로 참담한 심정이었습니다. 

2014년 4월 기나긴 트레이닝과정을 마치고,필리핀OTC팀과 한국본사팀간의 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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